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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자연과 인간의 조화, 댐 건설의 기록
기관
등록 2015/10/14 (수)
파일 151015 (국가기록원) 자연과 인간의 조화 댐 건설의 기록(외부).hwp
151015 (국가기록원) 자연과 인간의 조화 댐 건설의 기록(외부).pdf
내용

우리나라의 연평균 강수량은 1,274mm(1973~2011년 기준)로 세계 평균보다 1.6배 높지만 인구밀도가 높아 1인당 연강수량(2,660㎥)*은 세계 평균의 1/6수준으로 물 부족국가에 해당한다. 반면 연강수량의 70%가 여름철에 집중되어 홍수 피해가 잦다. 이러한 사회·자연적 조건을 극복하고 경제발전과 산업화에 필수적인 전력 생산과 용수 확보를 위해 꾸준히 댐을 건설해 왔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우리나라 최대 저수용량을 가진 다목적댐인 소양강댐 준공일(’73.10.15.)을 맞아, 10월 「이달의 기록」 주제를 “자연과 인간의 조화, 댐 건설의 기록”으로 정하고, 관련 기록물을 15일부터 누리집(홈페이지, www.archives.go.kr)에서 제공한다. 이번에 제공되는 기록물은 총 30건(동영상 14, 사진 15, 문서 1)으로, 전력 생산과 용수 확보로 산업화를 가능하게 했던 1950~80년대 전국의 주요 댐(소양강댐, 충주댐, 섬진강댐 등) 건설 모습과 의의 등을 보여주고 있다.

광복 이후부터 1950년대는 6.25전쟁으로 파괴된 댐을 복구하고, 부족한 전기를 생산하기 위해 우리 손으로 댐을 건설하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전후 재건과 복구를 위한 가장 중요한 과제로 발전시설을 확충하는 것이었다. 또한 일제강점기 때 댐이 북한지역에 집중적으로 건설되었던 터라 분단 이후 우리나라는 절대적으로 전원(電源)이 부족하였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 기술과 예산으로 건설한 충북 괴산댐(1957년), 1944년 완공되어 6.25전쟁으로 파괴된(1·2호 발전소) 강원도 화천댐(3호, 1957년)을 건설하였다.

1960~80년대는 경제개발 5개년계획, 4대강유역 종합계발계획 등으로 여러 개의 댐이 건설되었으며, 기술적인 면에서도 발전된 모습을 보인 시기였다. 1966년 특정다목적댐법(現 댐건설및주변지역지원등에관한법률)이 시행되면서 다목적댐이 본격 등장하게 되었다. 우리나라 최초의 다목적댐인 섬진강댐(1965년)을 필두로 가뭄과 홍수 조절, 용수 공급, 부족한 전력 공급 등의 목적으로 다목적댐이 건설되기 시작했다. 국내 최초이자 동양 최대 규모의 사력댐으로 가장 많은 저수용량을 가진 소양강댐(1973년), 낙동강수계에 처음으로 만들어진 안동댐(1976년), 금강수계에 최초로 만들어진 대청댐(1980년), 충주댐(1985년) 등 대규모 다목적댐이 차례로 준공되었다. 특히 소양강댐은 당초 수력발전용으로 설계되었는데, 발전(發電) 뿐 아니라 홍수조절과 용수공급이 가능한 댐을 건설해야 한다는 건설부의 주장으로 계획이 변경되어 다목적댐으로 건설하게 된 것이다. 소양강댐 건설에는 연인원 500만 명, 32톤 덤프트럭 30여 대를 비롯하여 스쿠퍼, 진동다짐기, 굴착기 등 국내에 처음 반입된 중장비들이 투입되기도 했다. 또한 발전전용 춘천댐(1965년), 당시 동양 최대 규모의 수문 15대가 설치된 발전전용 팔당댐(1974년), 대구 지역의 물 부족 해소를 위해 확장 건설된 생활·공업용수전용 가창댐(1986년) 등 전용댐 건설도 활발히 이루어져 바야흐로 댐 건설의 전성기를 맞이했다.

1990년대 이후에도 다목적댐, 발전전용 및 용수전용댐 등을 지속적으로 건설하여 효율적인 수자원 관리와 전원(電源) 확보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은 “자연에 대한 인간의 도전이라고 할 수 있는 댐 건설 기록을 통해 자연에 대한 도전과 공존을 지향해 온 모습을 돌아볼 수 있기를 바란다.”라고 밝혔다.

담당 : 국가기록원 콘텐츠기획과 조이현 (042-481-6381), 김영지 (042-481-637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