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정자치부(장관 홍윤식)는 제71주년 광복절을 앞두고 선열들의 독립운동과 함께 한 무궁화를 되돌아보고, 국가상징으로서 무궁화의 의미 확산과 선양방안을 마련하기 위해 연구용역을 추진한다.
이번 연구는 시대별로 문헌 고찰를 통해 우리 민족 5천년의 역사 속에서 무궁화의 기록과 흔적을 찾기 위해 추진하는 것으로, 9월말 본 연구가 마무리 되면 국화로서의 무궁화의 가치와 의미를 재발견하고 국민들이 국화에 대한 자부심을 더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바로는, 무궁화는 우리 민족의 시원(始原)과 함께 고조선 시대에서부터 조선시대를 거쳐 역사 속에서 존재해 왔으며, 특히 일제강점기에 독립지사들에 의해 우리나라의 표상으로서 전통이 계승되어 민족혼을 일깨우고 광복이라는 희망을 상징하는 꽃으로 국민들에게 널리 인식되었다.
연구에 참여한 신구대학교 김영만 교수는 “독립군들이 나라 잃은 서러움과 분노, 고국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광복의 의지와 희망 등을 담아 불렀던 군가와 시가 중 38편의 노래 가사에 무궁화가 ‘무궁화’, ’무궁화 동산‘, ’무궁화 강산‘, ’무궁화 화원‘, ’근화‘, ’근화강산‘등으로 표기되어 있음을 볼 수 있다.”라며 “당시 독립군들이 무궁화를 널리 애창하였고 무궁화가 나라꽃으로 이미 독립군들의 가슴에 깊이 각인되어 있었던 증거로 보인다.”라고 말했다.
김 교수는 이어 “「대한민국 임시정부 자료집」7권과「한국독립운동사 자료」3권 등에 나오는 내용이나 당시 언론에 게재된 무궁화 관련 기사를 살펴보면, 이미 임시정부나 국민들에게도 나라를 상징하는 꽃으로 여겨졌음을 보여준다.”라고 덧붙였다.
이와 같이 무궁화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과는 달리, 당시 “일제는 무궁화를 국민들의 독립정신을 고취시키는 꽃으로 받아들여 무궁화 관련 운동이나 무궁화 자체가 탄압의 대상이 되었다.”라고 했다.
일제가 펴낸「조선총독부 고등경찰 사전」에 의하면 ‘무궁화 강산’, ‘근화’, ‘근역’ 등은 불온한 뜻이 들어 있는 조심해야할 문구로 여겼고, 일제 강점기에 무궁화를 통해 민족혼을 일깨우고 광복운동을 펼쳤던 한서(翰西) 남궁억(南`宮檍) 선생이 십자당 사건으로 투옥되면서 그가 가꾸며 전국에 보급했던 무궁화도 강제 이식당하는 수난을 받았다.
더불어 신문사명 배면을 장식했던 무궁화 도안도 검열과정에서 삭제되는 등 곤혹을 당하기도 하였다.
이처럼 무궁화는 역사 속에서 우리 민족과 함께 해 온 꽃이고, 특히 일제의 침략과 온갖 역경 속에서도 굴하지 않고, 잃었던 주권을 영예롭게 되찾은 광복과, 그 이후 자랑스러운 대한민국을 만들어가는 우리 민족의 은근과 끈기, 강인한 도전정신을 잘 나타내 주는 꽃이다.
실제로 무궁화는 7월 초순부터 10월 중순까지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도 100일 이상 끊임없이 꽃을 피우는 강한 생명력을 지녔으며 아름다운 ‘태양의 꽃’으로 국민들 가슴 속에 사랑받아 오고 있다.
앞으로 행정자치부는 독립운동 과정에서 함께 해 온 무궁화에 담긴 나라사랑 정신과 의미가 국민 속에 확산되도록 ‘무궁화 선양 및 확산 방안’을 마련하고, 이를 위해 관련부처와 지자체 등과의 협업도 적극 추진할 방침이다.
담당 : 의정담당관실 이홍석 (02-2100-307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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