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0년 부산에서 발생한 ‘부산항일학생의거’는 광주학생의거(1929년)와 더불어 우리 독립 역사상 가장 큰 규모로 일어난 항일학생운동이다.
부산의거에 참가해 항일시위를 전개한 이들 10명의 명단이 추가로 확인됐다. 이번에 발견된 이들은 숨겨졌던 항일 독립운동가로서의 명예를 회복하게 되었다.
행정자치부 국가기록원(원장 이상진)은 제71주년 광복절을 맞아 일제의 대륙 침략전쟁이 한창인 1940년 11월 23일, 침략전쟁의 전초기지인 부산 한복판에서 ‘대한독립만세’를 외치며 항일시위를 전개한 학생들의 전체명단이 수록된 「퇴학생학적부」 등 총 12권을 최초로 발굴해 공개했다.
이 학적부들은 부산지역 교육청 등에서 이관된 것으로 국가기록원은 열람서비스를 위한 목록작성 과정에서 ‘퇴학이유’ 란에 관련 사실이 기록되어 있는 것을 확인하였다.
부산항일학생의거는 일명 ‘노다이 사건’으로 알려져 왔다. 1929년 광주학생의거 이후 가장 대규모로 일어난 항일학생운동으로 민족말살 정책을 수행하는 일제말기에 대륙침략의 발판인 부산에서 일어난 항일학생의거였다는 점이 학계의 주목을 받아왔다.
일제는 당시 학교병영화 정책을 시행하고, 부산 공설운동장에서 경남일원 일본인 학생 및 조선인 학생을 동원해 무장행군, 수류탄던지기 등 15종목 ‘전력증강국방경기대회’를 개최하였다.
심판장을 맡은 경남지구 위수사령관 대좌 ‘노다이(乃台)’가 일본인학생들이 우승하도록 편파운영을 하고, 조선인 학생들을 모욕하자 항일시위운동으로 발전된 사건이었다.
지금까지 이 사건은 단편적 신문기사와 참가자들의 회상록에 의거해 알려졌으나 이번에 전체 명단과 처벌 내용이 소상히 수록된 학적부 전체가 발굴된 것이다.
당시 항일시위는 동래고등보통학교(현 동래고), 부산제2공립상업학교(현 개성고)의 전체학생 약 1천여 명이 참여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번에 학적부를 통해 총 1,021명으로 확인되었다. 퇴학 등 징계를 받은 학생은 총 83명으로, 대부분 3~5학년 고학년생이다.
당시 시위는 고학년생이 주도하여 보수동 광복동 일대 거리시위에는 전체 학생이 참여, 밤에 전개된 ‘노다이’ 대좌 가택습격은 고학년 위주로 이루어졌다고 알려져 왔는데, 징계내용 분석결과 사실이었음이 확인되었다.징계를 받은 83명 중에는 그 동안 알려지지 않은 10명이 새롭게 확인되었고, 학생별 처벌 내용도 기록으로 증거할 수 있게 되었다.
이상진 국가기록원장은 “이번에 발굴된 학적부는 불굴의 항일운동을 상징하는 자랑스러운 항일기록물로 보존하면서, 살아계신 항일학생의거 참가자 또는 후손, 학술연구자들에게 원본열람은 물론 항일운동규명을 위한 학술자료로 적극 서비스 하겠다.”라고 밝혔다.
담당 : 국가기록원 부산기록관 노영종 (051-550-8090), 이상호 (809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