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산연, 처벌 차등화 등 제안
발주기관의 부정당업자 제재와 그 효력을 법원 확정판결까지 늦추려는 담합 혐의사들의 가처분 신청이 이어지는 악순환의 고리를 끊기 위해 제도를 합리적으로 손질하자는 제안이 나왔다.
거래질서를 어지럽힌 건설사에 대한 처분은 당연한 것이지만 사소한 계약이행상 잘못을 한 기업마저 ‘사형선고’나 다름없는 입찰금지 제재를 내리는 것은 과도하기 때문이란 지적이다.
한국건설산업연구원은 12일 ‘부정당업자 제재제도의 문제점 및 개선방안’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제안했다.
부정당업자 제재의 중복·과잉 논란은 해묵은 숙제다. 전체 공공기관에 포괄적으로 적용되는 공공공사 입찰금지 처분이 남발될 뿐 아니라 다른 형벌·처분과도 중복된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일례로 담합행위가 적발되면 형법상 2년 이하 징역 또는 700만원 이하 벌금, 건설산업기본법상 5년 이하 징역 또는 5000만원 이하 벌금, 공정거래법상 매출액 10% 미만 과징금, 국가계약법상 입찰참가자격 제한 또는 과징금, PQ심사요령상 신인도 감점까지 받아야 한다.
이에 더해 부정당업자 제재 사유가 너무 포괄적이란 게 건산연의 지적이다. 국계법령상 21가지일 뿐 아니라 부실·조잡, 부당, 정당한 이유, 부정한 행위 등의 모호한 문구로 규정된 개별 사유 특성상 실제 제재대상은 광범위하기 때문이라고 건산연은 설명했다.
조달청 자료를 보면 2008~2012년까지 부정당업자 제재 중 78.5%가 계약 불이행(60%), 계약 미체결(11%), 적격심사 포기(7.5%)과 같은 계약이행상 문제들이었다. 기업으로선 갑작스런 경영사정 악화로 언제든 직면할 수 있는 일이지만 그 처분은 치명적인 입찰금지다. 이런 과다한 제재는 발주기관의 우월적 지위를 고착화함으로써 또다른 제재의 불씨인 로비의 원인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는 게 건산연의 우려다.
건산연은 계약의 원활한 이행과 관련한 절차적 문제들인 계약체결 거부, 고의 무효입찰, 입찰 불참, 입찰참가 및 계약이행 방해, 심사서류 미제출, 심사포기, 실시설계서 미제출, 부적절한 감리원 교체 등의 행위에 대해서는 다른 제재수단을 만들 것을 제안했다.
나아가 21가지 사유 중에 다른 법령상 별도 제재가 명시된 하도급제한 위반 등 5가지 사유에 대한 처분을 재조정하고 다른 법률에 명시되지는 않았지만 건산법 및 형법상 형벌·처분과 병행되는 담합, 계약서류 위·변조, 뇌물 행위도 새롭게 손질해야 한다는 조언이다.
두성규 연구위원은 “21가지 사유별 제재수단을 입찰제한이나 과징금에 국한할 게 아니라 입찰·계약보증금 비율을 5% 높이는 캐나다와 같이 죄질에 따라 좀더 차등화·다양화할 필요가 있다”며 “경직적으로 제한한 과징금 대체요건, 형법에서도 인정하는 공소시효제 미적용, 공정거래법과 다른 리니언시(자진신고자 감면제)에 대한 경감 혜택 부재 등의 문제도 합리적으로 손질해야 엄정한 법 집행이 가능해질 것”이라고 조언했다.
김국진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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