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적인 수준의 기술력과 절박함, 그리고 재벌체제.’
베트남 등 아시아 건설시장에서 우리와 경쟁관계에 있는 일본이 평가한 한국기업의 강점이다.
4일 국토교통부와 해외건설협회에 따르면 일본 국토교통성 산하 국토교통정책연구원이 ‘해외건설 분야 경쟁국 조사연구 보고서’를 내놨다.
해외건설시장에서 빈번하게 적수로 맞붙는 일본의 국책연구기관이 한국 건설사들의 경쟁력을 최대한 객관적으로 분석한 자료다. 적을 알고 나를 알아야 승리한다는 ‘지피지기(知彼知己) 정신’이다.
보고서는 베트남 시장에서 일본이 한국에 밀리는 이유를 분석대상으로 삼았다. 일본은 해외 수주액의 절반 이상을 아시아(오세아니아 포함)에서 거둬 들인다. 하지만 최근 이 지역에서 수주 하향세가 뚜렷하다. 국가별 매출액을 보면 2002년 1위(60억달러)에서 2013년에는 5위(153억달러)로 떨어졌다. 그 뒤를 한국(146억달러)이 바짝 추격 중이다. 특히 베트남 시장에선 한국이 일본을 압도한다. 한국 건설기업은 최근 5년간 베트남에서 192억8000만달러를 수주했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492억7000만달러), 이라크(270억달러)에 이은 3위다.
베트남 건설시장은 부동산 시장 회복을 계기로 완만한 상승세다. 지난해 7월 베트남 정부는 2020년까지 도로, 철도, 항공 등 교통인프라개발에 약 500억달러가 필요할 것으로 추산했다.
국토교통정책연구원은 한국의 경쟁력 분석을 위해 베트남 건설부 등 3개 정부 부처 관료들을 직접 설문조사하고 한국과 경합ㆍ협업 경험이 있는 일본기업, 대형 종합상사, 종합건설사 등을 면담조사했다.
우선 베트남 발주처에선 한국기업들의 절박함을 높게 평가했다. 국내시장 규모가 작은 한국기업들은 해외시장 진출 의지가 강하다는 것이다. 소규모와 ODA(공적개발원조), 민간투자 등 프로젝트 규모를 가리지 않고 수주 의욕이 왕성하다고 봤다. ODA에 편중된 일본과 다르다.
또 한국은 일본에서 기술을 전수받은 분야(토목ㆍ건축)와 일본의 미진출 지역에서 실적을 쌓은 새로운 분야(플랜트ㆍ도시개발)를 앞세워 일본이 주도하는 아시아 시장으로 보폭을 넓히는 전략을 쓰는 것으로 분석됐다. 플랜트, 장비, 자재, 건설, 상사 등 프로젝트 전분야를 보유한 재벌체제도 강점으로 꼽았다.
기술수준에 대해선 ‘최고는 아니지만 통상적인 수주에는 충분’한 수준으로 평가했다. 현지 수요에 대한 대응능력이 뛰어난 것도 높게 쳐줬다.
의사결정 체제에 대해선 한국이 신속하나 합리성이 떨어지는 반면 일본은 합리적이지만 지나치게 신중하고 유연성이 떨어진다고 평가했다. 베트남 관료들은 한국의 리스크 분석이 부실하지만 현지 법ㆍ제도에 대한 이해와 문제해결 경험이 많아 일본보다 우수하다고 평가했다.
일본기업들도 베트남 관료들의 생각과 비슷했다. 한국기업의 강점으로 △해외진출에 대한 절실함 △폭 넓은 영업분야 △신속한 의사결정 △문제해결 능력 우수 등을 제시했다.
국토부 관계자는 “베트남 시장에서 한국에 밀린 일본이 국책연구기관을 통해 한국의 강점과 약점을 분석하기 시작했다”며 “일부 공감하기 힘든 내용도 있지만 우리보다 더 객관적으로 분석한 자료를 보고 깜짝 놀랐다”고 말했다.
한국도 일본처럼 주요 진출국가에 대한 맞춤형 전략평가를 해야 한다는 지적도 있다. 기존 평가가 미국 ENR지나 전문가 조사 등을 기초로 종합평가하는 방식이다보니 특정 국가에서 주요국과의 경쟁력을 비교하기에 미흡하기 때문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2014년)이 분석한 한국 건설산업의 글로벌 경쟁력은 2011년 9위에서 2013년에는 7위로 올라섰다. 국토교통과학기술진흥원(2012년)의 건설단계별 경쟁력 수준 분석을 보면 시공(86.3점)이 가장 높고 금융조달(66.4점)이 가장 낮다. 공종별로는 철도(79.9점)가 높고 플랜트(69.1)가 최저 수준이다.
김종현 해외건설협회 상무는 “동남아, 중동 등 진출 국가별로 중국ㆍ일본 등 경쟁기업과 우리기업의 경쟁력을 객관적이고 구체적으로 분석하는 연구가 절실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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