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개 중앙 부처 5500여명의 공무원들이 ‘600년 수도’ 서울을 떠나 세종특별자치시로 보금자리를 옮긴 지 한 달여가 지났다. 하지만 불만의 소리가 좀처럼 사그라들지 않는다. 세종청사 공무원들은 여전히 탈출을 꿈꾼다. 오죽하면 이들의 한숨이 모여 세종시 안개가 부쩍 짙어졌다는 우수갯소리가 나올까. 대한민국의 새로운 행정중심축이 될 세종청사는 도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이상적인 설계, 정치 소용돌이 거치며 ‘삐끗’
“21세기 청사에서, 20세기 공무원들이, 19세기 인프라로 생활하는 격이네요.”
세종청사 1단계 설계에 참여했다는 한 건축사는 세종청사의 어수선한 분위기를 이렇게 빗댔다. 교통·상업·교육 등 인프라 시설이 턱없이 부족한데다, 1980년대 지어진 과천청사에 익숙한 공무원들에겐 21세기형 행정타운을 표방한 세종청사가 ‘몸에 안맞는 옷’일수도 있다는 것이다.
실제 세종청사의 밑그림이 된 ‘중심행정타운 마스터플랜 국제공모’ 당선작은 2007년 1월 발표 당시 새로운 시도라는 호평과 함께 일부 우려섞인 목소리도 많았다. 정부청사가 너무 복잡하게 설계돼 공무원과 민원인들이 불편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획재정부의 K과장은 “과천청사처럼 성냥갑으로 짓는게 낫다”고 했을 정도다.
세종청사 마스터플랜은 △플랫 시티(Flat City) △링크 시티(Link City) △제로 시티(Zero City) 등 3가지 기본개념<개념도 참조>으로 짜여졌다. 이는 현재 청사의 모습 곳곳에 투영돼 있다.
플랫 시티는 말그대로 ‘평평한 도시’다. 20세기 근대 도시의 고밀도 수직 빌딩을 거부하고 도시 거주민 모두가 평등하게 이용할 수 있는 민주적인 상징성을 구현한 개념이다. 마천루를 거꾸로 뒤집은 듯 4~7층으로 제각각인 건물들은 놀랍게도 전체 옥상 높이가 엇비슷한 초대형 옥상공원으로 탄생했다. 링크 시티는 청사 건물을 외부와 고립시키지 않고 근무, 생활, 쇼핑, 위락 등을 끊김없이 즐길수 있도록 구성하자는 것이다. 청사 건물들이 마치 용 모양처럼 도로를 가로지르고 행정타운 곳곳으로 뻣어나가도록 설계한 이유다. 제로 시티는 ‘폐기물 없는 도시’를 뜻한다. 이는 세종청사의 좁은 도로와 주차장 대란으로 귀결됐다.
마스터플랜을 짠 남승영 해안건축 상무는 “마스터플랜의 기본개념이 제대로 구현되려면 청사 건축과 함께 인프라 시설이 비슷한 속도로 갖춰져야 하는데 그게 안됐다”며 안타까워했다.
인프라 문제는 세종청사가 지난 10년간 적지 않은 난관을 헤쳐온 것과 관련이 깊다<세종시 이전일지 참조>. 정치적 분쟁의 소용돌이에 자주 휘말렸고 그때마다 계획이 어긋나면서 건설도 제동이 걸렸다. 2002년 대선에서 노무현 당시 민주당 대통령 후보가 신행정수도 건설 공약을 내세워 당선됐지만 2년 뒤 헌법재판소의 위헌판결로 ‘행정수도’는 돌연 ‘행정중심복합도시’로 바뀌었다. 2010년에는 이명박 정부가 행복도시를 ‘교육·과학·기업 중심도시’로 변경하려다가 현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반대로 무산되면서 그제서야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세종청사 2단계 1구역 시공사인 GS건설 관계자는 “숱한 수난 속에 세종시 이전이 성사되다보니 툭하면 건설현장이 멈췄다”면서 “상당수 현장에서 공기가 계획보다 1~2년씩 늦춰졌다”고 말했다.
◇해안부·행복청·설계·시공사 머리 맞대야
전문가들은 세종청사의 ‘연착륙’을 위한 행정당국의 유연한 대처가 필요하다고 주문한다.
3단계 설계에 참여 중인 한 건축사사무소 관계자는 “아무리 멋진 설계도 이용자들의 패턴과 동떨어지면 좋은 설계가 아니다”고 말했다. 대표적인 것이 3.5㎞에 달하는 청사 연결통로다. 환경부 임직원이 총리실 합동 브리핑실로 이동하는데 왕복 40분 가량이 소요된다.
환경부 관계자는 “오죽하면 ‘3대가 덕을 쌓아야 BRT(바이모달트램)를 볼 수 있다’는 말이 떠돌고 있다”며 “철저히 이용자 관점에서 교통, 편의시설 등 인프라 구축을 서둘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건설업계 관계자는 “향후 100년을 가는 명품 청사로 짓기 위해선 남은 2~3단계에서 그동안 문제점들을 최대한 개선하기 위해 행안부와 행복청, 설계·시공사가 머리를 맞대야 한다”며 “특히 발주처인 행안부가 너무 경직된 잣대를 고집해선 안된다”고 주문했다.
김태형기자 kt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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