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설기술관리법 개정안 4월 적용...기초지자체 4월 피하려 조기발주
엔지니어링업체 PQ팀들이 쏟아지는 발주물량에 눈코 뜰 새 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건설경기 침체 속에 때아닌 호황이 한 달 가량 지속되는 덕분이다. 업계는 이 같은 호황의 원인으로 국토교통부를 지목했다.
10일 엔지니어링업계에 따르면 최근 한 달 동안 각 지방 발주처들의 설계 및 감리용역 발주물량이 예년보다 급격히 증가하면서 업체 PQ팀들이 정신없는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야근은 물론이고, 밤샘 작업을 불사하며 입찰서류를 만들고 있는 것이다.
대형 엔지니어링업체 PQ부서 임원은 “과거 3월에 발주되던 물량보다 50% 가량 늘어났다”며 “발주물량이 워낙 많아 입찰서류를 만드느라 일주일에도 이틀 정도는 밤샘작업을 강행하고 있다”고 밝혔다.
건설경기 침체 속에 이 같은 설계용역 발주물량의 반짝 증가가 이어지는 이유는 국토교통부 ‘덕분’이다.
국토부가 건설기술용역업자의 부담을 완화하는 명분으로 ‘건설기술관리법’ 시행령과 시행규칙 등 하위규정을 개정한 내용이 4월부터 시행되자 각 발주처가 부랴부랴 사업 발주시기를 3월로 앞당긴 것이다. 4월부터 발주되는 사업은 개정된 기준의 적용을 받기 때문이다.
실제로 조달청 나라장터에 게시된 입찰공고를 집계한 결과 최근 6개월간 발주된 설계용역 물량은 총 8486건인데, 이 중 66.5%에 달하는 5647건이 올해 3개월간 발주된 것으로 나타났다. 감리용역은 최근 6개월간 발주된 2353건의 사업 중 1292건이 올 1~3월 중 발주됐고, 특히 3월에만 무려 550건이 발주됐다.
국토부가 개정된 건설기술관리법 하위규정을 작년 12월 말에 공고하자 지방 발주처들이 발주시기를 앞당긴 정황이 고스란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업계는 지방 발주처들이 개정된 건기법 적용을 피하려 조기발주를 단행한 배경으로 지방건설기술심의위원회를 지적했다.
국토부가 개정된 하위규정을 통해 발주처들이 세부평가기준 마련 및 집행 과정에서 지방건설기술심의위원회 심의를 사전에 거치도록 의무화한 부분이 기초지자체들에 부담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국토부는 이번 개정안을 통해 SOQ(기술자평가) 및 TP(기술제안) 형식으로 발주할 때 발주타당성 여부와 세부평가기준의 적절성 여부를 지방건설기술심의위원회 등의 사전심의를 거치도록 명시하고 있다. 지방 발주처의 평가에 공정성을 제고하기 위한 방안이었다.
그러나 이 같은 규정은 기초지자체들에는 부담스럽다. 여태까지 상당부분 자의적으로 발주를 해왔던 기초지자체들에 도(道) 단위의 지방건설기술심의위원회 승인을 거치는 작업은 귀찮고 불편하기 때문이다.
이 같은 기초지자체들의 이해관계 덕분에 물량이 3월 중에 쏟아지자 업계는 ‘하나라도 더 수주하자’는 목표 아래 분주히 뛰는 분위기다.
업계 관계자는 “4대강 사업 이후 지난 3월처럼 물량이 쏟아진 적이 없어 당황스럽다”면서도 “이렇게 물량이 풀릴 때 수주하지 않으면 올해 목표수주액을 맞추기가 힘들 것 같아 열심히 입찰서류를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 같은 물량 쏠림 현상을 업계가 마냥 곱게만 바라보는 것은 아니다.
중소업체 PQ임원은 “이런 일이 빚어질 때마다 항상 느끼는 거지만 정부 및 공공기관 발주처들은 항상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움직인다”며 “물량이 한꺼번에 발주되면 중소업체들은 인력 등 문제로 대다수 사업에 참여하기란 가능한데 이 점을 정부가 고려나 했겠느냐”고 지적했다.
최지희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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