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찰 계약서에 없는 추가 요구 일쑤
/설계VE마저 공사비 삭감수단 악용
최저가낙찰제뿐 아니라 턴키공사마저 ‘슈퍼갑’인 발주기관 횡포가 만만치 않다는 지적이 나왔다.
실시설계적격자로 선정된 이후 별도 업체에 설계VE(가치공학)를 맡겨 공사비를 후려치는 것은 물론 당초 입찰안내서를 벗어난 요구를 쏟아내고 있지만 계약금액 조정은 거부하는 현실이란 하소연이다.
22일 관련업계에 따르면 최근 중대형 건설사들의 공공공사 수주담당팀장들이 모인 가운데 열린 ‘턴키제도 개선 간담회’에서 이런 지적들이 잇따랐다.
참석자들이 지목한 최대 애로점은 실시설계적격사에 대해 발주기관들이 당초 입찰안내서에서 명시하지 않은 추가 사항들을 요구하는 관행이었다. 계약금액 조정이 이뤄지면 문제가 없지만 대부분 발주기관이 외면한다. 심지어 설계심의 과정에서 결정된 사항마저 무시한 채, 추가 요구를 강행하는 사례도 상당하다는 하소연이다.
현행 턴키 관련 규정상 입찰안내서 범위를 벗어난 추가요구나 보완요구는 기본설계 심의 때 지적된 사항에 한해 가능하다. 그러나 ‘추가요구’의 기준이 불명확한 탓에 발주자들이 무리한 요구를 강행해도 입찰안내서상 성능을 실현하기 위한 것이라고 주장하면 대응이 쉽지 않다는 게 업계 항변이다.
한 참석자는 “입찰금액의 일정수준, 예를 들면 1%를 초과하는 추가 요구사항에 대해서는 계약금액 조정요건으로 명시해야 이런 폐해를 막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발주기관별로 경쟁적으로 시행하는 설계VE도 공사비 삭감 수단으로 변질됐다는 지적이다. 이를 맡은 업체들이 발주기관 구미에 맞게 실시설계적격자의 공사비를 깎는 데 악용된다는 목소리다.
턴키발주 경험이 적은 교통안전공단 등 일부 기관은 입찰안내서 내용마저 페이지별로 달라 해석상 애로가 나오고 분쟁의 빌미가 되기도 한다는 지적이다. 이를 막기 위해 업계 차원에서 턴키 관련 유권해석 사례 등을 공유하자는 의견도 제기됐다.
대다수 건설사들이 턴키의 낙찰자 결정방식 중에 손실 위험이 상대적으로 적은 확정가격 최상설계가 바람직하다는 입장이었다. 일부 중견사들은 총점차등제를 강화(10점 이상 등)하면 중견사 참여가 사실상 어렵기 때문에 어느 정도의 가격경쟁 요소를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도 내놓았다.
기술력을 최우선으로 하는 턴키가 예산절감을 위해 사실상의 최저가낙찰제로 변질, 운용되는 데 대한 우려도 깊었다. 똑똑한 발주자라면 완성된 시설물 품질에 대한 최소 가이드라인을 갖고 발주에 임해야 하며 그런 측면에서 기준적합 최저가방식 채택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이었다. 적어도 사전 설계 및 입찰방법 심의에서 턴키 필요성이 인정된 공사들이기 때문이다.
최근 각광받는 온라인 설계심의에 대해서는 심사 공정성 확보는 가능하지만 사전로비를 차단하는 데는 한계가 있기 때문에 추가적 제도개선이 병행돼야 한다는 목소리가 주류였다.
이날 자리를 마련한 대한건설협회 관계자는 “발주기관의 입찰안내서를 벗어난 과잉요구에 대한 불만이 가장 컸고 이는 원도급사 실행률 악화에 이어 하도급, 2차 협력사, 건설근로자 피해까지 유발하므로 발주기관이 스스로 자제해야 한다는 게 중론이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김국진기자 jin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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