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축설계 하는 기술사” vs “건축은 디자인 개념… 동일한 등급체계 적용 불가능”
국토교통부가 새로운 건설기술자 등급체계(건설기술인력 분류체계·ICEC)를 만드는 작업에 착수한 가운데 건축사들 사이에서 기술자 등급체계 편입 여부를 높고 논란이 가열되고 있다.
건축사는 건축설계를 하는 기술사라는 의견이 있는 반면, 건축은 디자인의 개념이어서 경력과 학력을 따지는 기술사 등급체계로는 우위를 따질 수 없다는 입장이 팽팽히 맞서고 있다.
6일 건축업계는 최근 건설기술진흥법 통과에 따라 정부의 건설기술자 인력등급체계를 마련하는 작업이 본격화되자 건축사 지위를 둘러싼 논란이 한층 심화되는 분위기다.
현재 국토부가 마련 중인 건설기술인력 분류체계 개편안은 제5차 건설기술진흥기본계획안에 포함되는 것은 물론, 내년 건설기술관리법령의 개정과 함께 시행될 예정이다.
개편안에 따르면 기술인력의 등급은 현행 4등급에서 10등급으로 세분화된다. 100점 만점의 건설기술자 역량지수(ICEC)를 개발해 기술인력에 대한 종합평가점수를 매기는 개편안은 시공과 용역 구분없이 자격과 경력, 학력 비중이 40:40:20이다.
건축업계가 주목하는 점은 해당 개편안에 건축사가 포함된다는 사실이다.
국토부는 개편안을 마련하며 자격(40점) 부문에서 기술사와 건축사를 만점으로 정량화했다. 기술사와 기사 사이의 점수 차이는 8점, 건축사와 건축사예비시험합격자 사이의 점수 차이도 8점이다.
자격에서는 기술사와 건축사가 동등한 만점을 받지만, 학력 부문에서는 건축사가 기술사보다 약간 유리하다.
최고학력 수준을 박사(20점 만점)로 설정하고, 학력별 졸업과 학위 취득까지 요구되는 연수를 기준으로 하다 보니 학사 과정이 5년인 건축사가 4년제인 기술사보다 1점을 더 받는 형식이다. 이 때문에 국토부가 건설기술인력 분류체계 초안을 발표했을 당시 기술사들은 학사 부문의 점수 할당 부분을 문제 삼았고, 현재 수정을 요구하는 중이다.
반면 건축업계는 이번 개편안에 건축사가 포함되는 것 자체를 반대하는 분위기다. ‘건축사는 건설기술자가 아니다’라는 논리다.
업계 관계자는 “건축사는 건축사법에 의한 국가자격증이고, 특급 기술자인 기술사는 국가기술자격증으로 관련 법과 분류체계가 완전히 다르다”며 “기술사는 특정 부문의 전문가지만, 건축사는 건축물의 모든 공종을 아우르는 종합적인 지식을 필요로 하는 동시에 독창적인 디자인과 예술적인 성격도 필요한데 기술사 체계로 건축사를 판단하는 것은 불합리하다”고 주장했다.
업계는 정부가 건축사를 기술자 등급체계에 편입시킬 경우 국내 모든 고급 기술인력이 단순 기능인력 수준으로 하향 평준화된다며 강하게 반발하고 있다. 지난 4월부터 건축사를 ‘특급 기술자’로 대우하는 건축사법 시행령도 엄밀히 따지면 기존의 건축사들을 모욕하는 법안이라는 것이다.
동시에 건축사가 건설기술자 등급체계에 포함됨으로써 기술인력으로서의 지위 제고를 도모하고, 정부 지원도 받아야 한다는 주장도 존재한다.
중견건축사사무소 대표는 “건축사는 건축물 설계와 전반적인 유지관리 업무까지 총괄하는 건설기술자”라며 “정부 방침이 건축과 토목, 설계와 시공 등 건설 전분야를 일원화해 통합관리한다는 것인데 건축만 개별 논리를 내세워 독립하는 것이 과연 업계에 도움이 될지 냉정하게 분석해 볼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업계는 ‘건축사가 과연 건설기술자’인지의 여부를 둘러싼 논란이 앞으로 더욱 본격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건설기술진흥법이 시행됨에 따라 설계와 감리, 건설사업관리(CM) 등 3가지 용역 업역이 통합되는 가운데 건축 설계 부문만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만약 건축사가 건설기술자가 아니라는 논리를 내세울 경우, 정부가 추진하는 건설기술진흥 정책에서 건축은 별도 노선을 취할 수밖에 없다. 독자적인 산업 진흥 정책을 마련해 해외진출과 기술인력 지원을 받아야 한다는 뜻이다.
이 같은 업계 논란에 대해 대한건축사협회 측은 “현재 건축은 건설기술자가 아니라는 방침 아래 건축업계가 건설기술진흥법의 영향을 받지 않도록 대응하고 있다”며 “기술인력 등급체계에서도 건축사는 ICEC 적용을 받지 않도록 건축사 별도의 등급체계를 만들어 경력과 학력, 자격을 아우르는 방안을 모색 중”이라고 밝혔다.
최지희기자 jh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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